부피만 차지하던 거실 속의 골칫덩이
작년 겨울이었나, 아이가 하도 미끄럼틀을 타고 싶어 해서 당근마켓에서 꽤 그럴싸한 가정용 어린이 미끄럼틀을 사 왔다. 처음 며칠은 아이가 정말 신나게 올라가고 내려오고를 반복했다. 문제는 그게 며칠 못 갔다는 거다. 거실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그 커다란 플라스틱 구조물은 이제 아이의 놀잇감이 아니라 빨래 건조대를 기대어 놓거나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받침대가 되어버렸다.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이리저리 옮기는 것도 일이었고, 층간소음 방지 매트 위에 눌어붙은 자국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결국 지난주에 상태 깨끗하게 닦아서 다시 당근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금방 팔려서 홀가분하면서도 묘하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우리 집 거실은 다시 평화로워졌지만, 아이는 여전히 에너지를 쏟을 곳이 필요했다.
대구 근처에서 찾은 대형 놀이 공간의 현실
집에 있는 작은 미끄럼틀로는 성에 안 차는 아이를 데리고 대구 근처의 규모가 좀 있는 키즈카페를 검색했다. 예전에 가봤던 곳들은 너무 좁아서 아이들끼리 치이고 다투는 게 눈에 훤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넓은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네이버 지도로 검색하다 보니 어린이 정글짐이랑 대형 인조나무가 인테리어로 들어가 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주말에 방문했는데, 입장료는 2시간 기준으로 어른과 아이 포함해서 2만 원대 초반 정도였다. 사실 요새 물가를 생각하면 아주 비싼 건 아니지만, 들어가서 커피 한 잔 시키고 아이 간식까지 챙기면 결국 3~4만 원은 훌쩍 넘는다. 입장하자마자 느껴지는 그 특유의 습한 공기와 소음이 섞인 열기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시설 관리 차원에서 공기청정기를 돌리는 것 같긴 했지만, 많은 아이가 한꺼번에 뛰어노는 곳이라 미세먼지나 공기질 걱정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블럭방에서 보낸 의외의 고요한 시간
정신없이 정글짐을 누비던 아이가 갑자기 블럭방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형 인조나무 밑에 아늑하게 만들어둔 공간인데, 여기가 의외로 명당이었다. 바깥에서는 아이들 소리가 거의 전쟁터 수준으로 들리는데, 여기는 칸막이가 있어서 그런지 조금 조용했다. 아이가 레고 블럭을 조립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실 이런 곳에 오면 부모들은 쉴 틈이 없다. 같이 따라다니며 혹시라도 미끄럼틀에서 떨어지진 않을까, 트램펄린에서 뛰다가 다른 아이랑 부딪히진 않을까 계속 눈을 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뉴스에서 본 키즈카페 안전사고 기사가 떠올랐다. 트램펄린에서 공을 밟고 넘어져서 보험 처리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연 같은 것들 말이다. 시설 측에서 배상책임보험을 들고는 있다지만, 막상 사고가 나면 그 뒤처리 과정이 얼마나 피곤할지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무질서한 슬라이드 구간의 긴장감
잠시 쉬던 아이가 다시 슬라이드 쪽으로 달려가기에 뒤따라갔다. 가파른 경사의 미끄럼틀 아래쪽은 항상 혼잡하다. 아이들이 내려오는 속도가 제각각이다 보니 먼저 내려온 아이가 자리를 비키기 전에 뒤따라오던 아이가 덮치듯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호자들도 근처에 서서 서로 눈치를 본다. ‘우리 애가 먼저인데’, ‘왜 안 비키지’ 같은 무언의 압박들이 느껴지는 곳이다. 나도 아이가 다칠까 봐 쫄아서 슬라이드 옆을 계속 서성였다. 시설 자체는 잘 만들어놨는데, 아이들의 안전 거리가 전혀 확보되지 않는 구조가 아쉽다. 예전에는 이런 곳에 목업으로 제작된 정교한 캐릭터 조형물이나 멋진 장식들이 많으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아이들이 부딪힐 만한 모서리는 없는지, 안전 요원이 상주하는지부터 눈에 들어온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묘한 피로감
두 시간쯤 지나니 아이도 지쳤는지 먼저 나가자고 했다. 퇴장할 때 정산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키즈카페 안의 그 덥고 답답한 공기를 마시다가 바깥공기를 마시니 살 것 같았다.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즐겁게 놀았으니 된 건데, 왜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항상 이렇게 녹초가 되는지 모르겠다. 다음번엔 차라리 놀이터가 잘 되어 있는 공원을 갈까 싶다가도, 한여름 땡볕 아래서 애들 쫓아다닐 생각을 하면 다시 키즈카페를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완벽한 휴식은 애초에 없는 것 같다. 그냥 오늘 하루도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놀고 왔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지.

아이 블록 조립하는 모습 보면서, 사실 이런 곳에 부모가 꼼지락거리는 게 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블럭방에서 잠시 조용한 시간 찾으시는 거 보니, 저도 아이랑 같이 이런 공간에서 쉴 때 부모의 불안함이 느껴지는지 몰라요.